이번 전시에서 박형지와 이은영은 각각 회화와 드로잉 작업을 통해 문이 잠긴 정원에서 사라진 돌에 대한 이미지를 추적한다. 이은영은 그간 종종 선보여왔던 드로잉들을 책의 형식으로 묶어냈고, 도자를 기반으로 하는 조각 작품을 함께 선보인다. 박형지는 ‘실패와 망치기’라는 과정을 거쳐 완성한 회화들로써 이은영의 작업에 호응한다.
전시를 구성하는 작품들 안에서 돌은 하나의 대상이지만 한편으로는 비어 있는 대상이다.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돌은 단단한 사물이기 보다는 말랑말랑한 개념과 같이 다뤄진다. 이은영의 드로잉북 안에서는 얼룩덜룩하고 박형지의 회화 안에서는 울퉁불퉁하다. 심지어 박형지의 회화 안에서, 사라진 돌은 돌도둑 그 자신이기도 하다. 자유롭게 변신 당하고 이동 당하는, 비어 있고 유동적인 대상인 셈이다. 결국 돌은 정말로 사라지고, 두 작가가 각자의 시선과 태도로 사라진 돌을 추적하는 방식이야 말로 우리가 주목해야할 지점으로써 부상한다. 그리고 동시에, 캔버스 화면에 그려진 그림이 보여주는 혹은 낱낱의 드로잉들이 엮여 있는 책이 펼쳐내는 비선형적 서사들의 교차에 이번 전시의 초점이 맞춰져 있음이 어렴풋이 드러난다.
하지만 서사의 출발점은 동일했으나 두 작가가 이를 다루는 방식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박형지는 회화 내부와 외부 모두의 방향으로 서사의 외연을 확장한다. 실재하는 단 하나의 장면은 ‘돌이 사라진 정원’이지만 그의 회화가 포착한 장면들은 < 돌이 있는 정원 >과 < 다른 정원으로 간 돌 I >, 그리고 그 누구도 본적 없는 < 돌도둑 II >이다. 수많은 실패와 망치기 끝에 만들어진 울퉁불퉁한 회화 표면이 작품 내부에 존재하는 다양한 층위를 상상하게 하듯, 그가 포착한 장면들은 작품 외부에 존재하는 또다른 서사의 가능성을 상상하게끔 우리를 이끈다. 한편, 이은영은 도둑의 시선을 쫓는다. 작품의 제목 < 아주 짧은 산책길에 본 얼룩돌 >의 주체는 어쩔 수 없이 돌도둑 그 자신이다. 즉, 비어 있는 대상을 욕망하는 자가 바라본 풍경에 대한 드로잉들이다. 드로잉북을 가득 채운 대상을 탐닉하는 듯한 필체와 분절되어 있는 장면의 연속 또한 이에 상응한다. 돌(도자)에 각인된(그려진) 돌들의 정원이 돌도둑/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상징하는 풍경처럼 보여지는 이유 또한 같은 맥락일 테다.
정원에서 사라진 돌에 대한 두 작가의 가벼운 대화에서 시작된 이번 전시는, 이렇듯 안과 밖 모두의 방향으로 확장되는 이미지-서사의 가능성을 펼쳐 놓는다. 느긋하고 세심한 관람자에 의해 이 모든 가능성들이 더욱 풍성해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