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a KIM     김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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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Oct - 10 Nov, 2023
플랫_알레프_김하나_전시_글_이동혁.jpg
봄화랑에서의 첫 개인전인 이번 전시에서 김하나는 신작 회화 열 점을 선보인다. 그리고 이 중 아홉 점의 회화는 벽에 걸리지 않고 낮은 선반 위에 놓여져 있다.

선반에 놓여진 아홉 점의 회화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지 않다. 가장자리나 틈새에 어떤 미세한 안료의 자국들이 있기도 하지만 색이나 형태를 의도한 붓질의 흔적으로 보여지지는 않는다. 또한 초록색의 천 조각들이 사뭇 단정하게 겹쳐지거나 이어 붙여져 있을 뿐 틀에 메여 있지도 않다. 그저 조용히 잠든 것처럼 놓여져 있다. 응당 회화가 갖춰야 할 형식적 조건으로부터 꽤 벗어나 있는 듯하여 이를 회화라 부를 수 있을지 조차 확언하기 어렵다. 각 작품의 제목 “플랫(flat)”이 오래된 모더니즘 회화의 강령을 가볍게 상기시키는 정도일 뿐이다.

설혹 이것들이 회화가 아니더라도, 그런데 중요한 점은, 연약하게 누워있는 이 회화(아닌 것)들이 너무나도 강력히 회화의 물리적 실재성을 드러낸다는 사실이다. 반듯하게 다림질 되어있는 초록색의 천 조각조각들은 우리의 시선이 실오라기 하나하나의 모양, 빛의 반사에 따른 색감과 질감의 변화, 물감의 옅은 흔적 등과 같은 그 표면에서의 미세한 움직임에 집중하게끔 하며, 이로써 우리가 바라보는 어떤 매우 얇고 평평한 면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증명해낸다. 즉 < 플랫(flat) >의 미세하고 연약한 표면들은, 회화란 감상자의 인지 안에서 존재하는 환영적 관념의 총체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원적으로 어떤 표면 위에 위치하는 물질적 실체라는 점을 드러낸다. 회화의 표면은 붓이 머물고 물감이 올려지는 장소이며 그렇기에 회화는 바로 이 장소에 위치한, 평평하지만 깊은 대상인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회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새로운 출발점에 도착한다.

전시의 유일한 캔버스 회화인 < 플랫 10(Flat 10) >의 테두리는 옅은 보랏빛으로 칠해져 있다. 회화 표면의 깊이란 바로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회화를 구성하는 물질적 토대의 일부이지만 회화가 아닌 것, 연약한 회화의 표면을 굳건히 떠받치는 유령, 어쩌면 사실 ******.*.***..***처럼 말해질 수 없는 것.